직장생활

6. 퇴사한 후에야 나의 진가를 알게 된다

이상한 두부 2023. 5. 9. 18:33

몇 년 전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직한 후 결국 퇴사했다. 퇴사하기 전 직책은 팀장이었는데, 원 없이 바쁘게 일했었고 브랜드 포지션에 있었던 덕분(탓)에 그룹 내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일했었다. 케이스 별로 계열사 소위 C-level(C로 시작하는 직급을 가진 사람들, CEO, CFO 등)부터 그룹 chairman까지 모두 나의 상사였고 여러 실무자들과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의견을 나누고 협업했었다.

회사 안에 적은 만들지 않았고 동료들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 애쓰며 인간관계도 (내 생각엔) 원만했다. 점심약속으로 캘린더가 빡빡했으니까. 그런데 회사를 휴직하고 이후 퇴사하면서 깨달은 명제가 있다. 나라는 인간의 진가는 퇴사 이후 모든 지위를 내려놓으면 드러난다는 것.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한 회사. 아직까지 연락하는 회사친구들은 입사 직후 사귄 동료들이 대부분이다. 재직할 동안 나에게 "팀장님!"하며 나를 챙기고 다가오던 사람들은 내가 카톡 리스트에서 보고 반가워 안부를 물었을 때 오히려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내가 아무개 '팀장'이었던 것.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 자리가 관계에서 필요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본인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든 법카로 점심을 사주는 것이었든 ㅎ 

그게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관계들도 살다 보면 필요하다. 어떻게 모든 관계를 깊이 있고 영속적으로 가꿔갈까. 더군다나 경력이 쌓일수록 사람을 '일'로 만나지 '사람'으로 만나지 않게 되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예전 동료들이 뜬금없이 나에게 연락을 준다면, 최소한 인간적으로는 반가워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게 함정 ㅋㅋ)  

내가 직책이 높아지면서 주위에서 나를 OO님으로 불러주고 대접해주니 기분이 좋은가? 팀장님, 이사님, 상무님, 전무님.. 점점 올라가다 보면 그런 대접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높은 자리로 갈수록 상사'병'에 걸리지는 않는 것이 현명하다. 주변에서 '대표님' '대표님' 한다고 으스댈 필요가 없다. 씁쓸하지만 그건 당신의 자리를 높여준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진가'가 '진짜 친구'가 궁금하다면 그건 그 직책을 내려놓은 후 알게 될 것이다. 

 

Photo by Marcos Paulo Prad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