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인연을 맺은 은사님이 계시다. 20대의 나에게는 정신적인 지주가 필요했는데 이 분이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스스로를 보험과 같이 생각하라 하신 말씀은 당시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사회 생활 시작하고 연 2-3회는 근황을 메일로 알려드리고 여쭙기도 했는데, 점차 연 2회 추석과 설 때 선물 보내는 정도로 빈도와 정성이 줄어들었다. 건강 문제로 집에 있은 후로는 의기소침해진 면도 있었다. 의대 합격에 SKY 졸업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스펙, 어렵게 공부하고 나름 괜찮은 회사에서 잘 나가나 했더니 결국 무직자 신세라니, 당시 교수님도 내 소식에 매우 아쉬워 하셨다.
고민하다 11월 가족을 맞게 된 근황을 짧게 문자로 알려드렸다. 몇 분 후 전화가 울렸다. 교수님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싶었는데, 가장 먼저 꺼내신 말씀이 '올 해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다'였다. 살면서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있겠냐 하시며, 본인도 둘째 며느리가 늦둥이를 보게 되어 16개월 손주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 하셨다. 그리고 짧은 통화는 육아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통화를 마친 후, 연초 아이들을 위해 조기 유학 및 해외 거주를 고민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당시 우리 둘은 영어 회화 연습차 주 1회 만났고 친구는 영어 원서 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몇 개월 뒤 예상보다 코로나 파장이 길어지면서 친구는 영어 공부는 그만두고 홈베이킹을 하는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앞으로 해외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나간다고 해도 그게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달라진 삶의 방향성, 가치들이 느껴졌다.
나의 사회적인 성공보다 나와 가족이 더 중요한 시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성적인 투자보다 코 앞의 따뜻한 행복을 나누는 시대.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삶의 방향성과 가치들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방향이 아주 싫은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남에게 보여지는 것보다 더 내면 지향적인, 인간으로서 본질의 가치에 집중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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