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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육아

#5. 모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feat.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스포일러 약간)

by 이상한 두부 2022. 1. 23.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보다 펑펑 울었다.

마지막 화에 김소현(원진아 분)이 시연을 앞둔 아기를 품에 안고 이런 대사를 한다.

 

처음에는요.
아기울음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어요.

끔찍했어요.
이유도 잘 모르겠고
나에게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아기들은 자기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우는 거겠죠?
배고프다고 졸리다고 춥다고 덥다고
할 줄 아는 게 우는 것밖에 없으니까.

근데요.
그게 다 자기를 살려 달라고 그 얘기를 하는 거였어요.
계속 살고 싶으니까
자기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우는 거에요.

처음이에요.
누군가 이렇게 강하게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 게. 
나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 게 처음이었다고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중 소현이 아기를 바라보는 장면

 

나는 내가 모성애가 넘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 막 태어난 그 아이를 보고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게 아니라

작고 빨간.. 원숭이 같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심지어 엄마한테 저 말을 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당함 ㅠ

(사실 내가 가진 건 모성애라기 보다 '인류애' 혹은.. 생명을 가진 것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닐까.. 싶다 ㅎ)

 

여하간. 내 아이를 낳았을 때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혹은 맘카페의 출산 후기에서 읽었던 것처럼...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고 그러진 않았다.

'오 속이 이제 편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오랜 입덧으로 그 간 못 먹었던 것을 먹을 수 있겠다는 게 가장 신났다는...진짜임 ㅋ

 

코로나 때문에 2박 3일 퇴원할 때에나 아기를 처음으로 직접 만나봤고

조리원에서도 면회시간(?)에 아기를 방으로 데려와 안아볼 수 있었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라든가..

세상이 너로 인해 달라졌다거나 그런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 때는 그냥. 새롭고 낯선 존재가 곁에 생겼을 뿐이었다.

무조건적인 모성애. 헌신. 이런 건 나와 거리가 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난 15개월 가까이 아기와 거의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아기는 내 일상의 대부분이 되었다.

내 마음의 비중이 커서 대부분이 되었다기 보다는

아기는 돌볼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게 대부분 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지옥의 대사에서처럼

"누군가 이렇게 강하게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한 게, 나 아니면 안된다고 한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내 마음에도 아기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 아니면 안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게 마치 꼭 나여야 하는 것처럼 (사실 그렇지 않을텐데) 느껴지기도 하고.

나같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전부를 턱 하고 맡기도 있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걷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고 그런 것들이 귀엽고 뿌듯하기도 하고..

이제야 엄마가 된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기분.

 

아기를 낳기 전부터 또는 아기를 낳지 않아도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분들도 있다.

(특히 드라마에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모성애는 반드시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혹시 '나는 왜 이렇게 모성애가 없을까' 고민하는 초보맘이라면 걱정 내려 놓으시길..

아기와 당신 앞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이 놓여져 있고

수 많은 기억들이 그 시간을 채워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도 서서히 자리잡을 것이다.

 

걱정 많은 초보맘, 화이팅!